조선만의 역법 칠정산과 세종대왕

역사 학계에서도 다양한 기록 유산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한 국가 조선은 무려 500년이라는 긴 왕조 존립 기간 동안 다양한 문화재들을 남겼는데요. 그 중에서 천문학에 아주 깊게 관련된 ‘칠정산’ 이라는 역법이 존재합니다.

< 칠정산 사진 – 출처 : 우리 역사넷>

칠정산은 세종 26년(1444년)에 만들어진 우리 민족 최초의 역법 서적인데요. 이 칠정산은 제작되기 까지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동북아시아는 송나라와 고려가 멸망하고, 명나라와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며 서로의 수직적 관계를 정립하려는 명과 이를 최소화하려는 조선의 피나는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조선과 명나라는 조공책봉 관계를 확립함은 물론, 황제의 가장 큰 권한인 천체 관측과 역법 제정 등을 명나라에 의존해 왔습니다.

그러나 세종 4년(1422년) 당시 기상과 천문 해석을 담당하는 서운관에서 태양이 사라지는 일식이 예보 되었고, 갑작스러운 천문 현상은 왕의 실정과 부덕으로 여겼던 당시에 세종은 백성들 앞에 나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를 진행하기로 합니다.

< 세종의 일식 관련 제사 그림 – 출처 : EBS >

하지만 당시 명나라의 달력과 명나라의 천체관측 데이터를 기반으로한 역법으로는 조선에서 발생하는 일식을 정확하게 예보하는 것이 불가능했는데요. 이 여파로 실제로 1각(약 15분) 정도 일식 예보보다 뒤늦게 일식이 일어나면서 당시 일식 예보관이던 이천봉은 곤장을 맞는 형벌에 처하게 됩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은 세종께서는 후대의 왕들을 위해 그리고 이 땅에서 농사를 짓고 생활하는 백성들에게 정확한 절기와 적절한 농작물의 유리한 파종 시기를 안내할 목적으로 역법과 천체 관측을 위한 천문 의기 제작을 진행하게 됩니다.

다만, 이 시대의 역법과 천문 의기 제작은 하늘의 자손이자 동아시아의 맹주 국가 명나라의 황제의 고유 권한으로 인식되어 명나라로 부터 엄청난 견제를 받아왔는데요.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천과 장영실 등의 여러 학자들을 통해 비밀리에 시계, 천문 의기, 역법 등을 연구하는데 성공했고, 실제로 궁궐 내에 관측소를 설립함은 물론 산학(수학)에 능한 학자들을 등용 시켜 우리 민족 최초의 역법서이자 최초의 태양력을 활용한 역법인 ‘칠정산’을 발행하는데 성공합니다.

우리가 중, 고등학교 국사를 배울 때, 칠정산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듣고 관련한 내용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매우 드문데요. 이 탓에 칠정산이 단순한 천문 달력이거나 수학 책이라고 가볍게 넘어가시는 경우가 많음을 압니다.

그러나 최초로 우리나라 서울(한양)의 위도를 우리의 역법으로 측정함은 물론(위도 약 38.25도로 측정에 성공), 명의 외교적 압박에 굴하지 않고 백성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세종과 관료들의 피나는 노력과 절실함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소개해 드렸습니다.

추가로, 조선 시대의 기록들은 그 문헌이 워낙 많고 방대하여 아직도 중앙 정부의 기록조차(승정원 일기나 조선왕조 실록) 완벽하게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 이러한 사실들이 대중적으로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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